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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 블로그

2023.09.11.

믿음 (fea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생각할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은 좋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믿을 것인가? 주저리주저리 했습니다.

연차를 내고 휴식을 합니다. 좀 휴식 다운 휴식을 하기 위해서, 여자친구와 거창한 데이트는 하지 않고 읽고 싶었던 책 하나를 정해서 북카페에서 잔잔하게 읽기로 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정하고 알라딘에서 바로 사고 2장까지 가볍게 미리 읽고 북카페에서 나머지를 읽었습니다.

어떤 물고기 학자를 다루는 전기적 성격을 띤 에세이라는 정보만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정보는 제게 오히려 혼돈이었습니다. 전기가 어떻게 에세이가 되는 걸까? 책을 조금 읽고 나자 의문은 곧 해소되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좋네요.

작가 룰루 밀러는 우리와 같은 21세기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남자는 1851년 태어나 1931년 죽었습니다. 위대한 어류학자로서, 헌신적인 교육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조던. 작가는 조던에게 밀어닥친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를 조명합니다. 당시 조던의 태도는 작가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습니다. 지진 때문에 조던은 30년 간의 연구 실적들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훌훌 털어냈습니다. 그 에너지. 그 기개. 무엇이 그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는지, 실마리와 단서를 찾기 위해 작가는 그를 향한 절실한 여행을 떠납니다.

작가는 조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 본격적으로 그를 탐구해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생생히 묘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덧붙입니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지어냅니다. 흥미진진합니다. 실제 모든 이야기는 비선형적이었을 겁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작가를 관통했겠죠. 그 이야기를 분류학자마냥 비슷한 특징을 가진 것 끼리 모아 바늘로 실을 꿰매 차례로 빨랫줄에 널어놓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1장부터 13장,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호흡은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사운드의 크기만 커졌다 줄었다 하는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절제되었지만 아주 충분히 보여줍니다.

요즘 그나마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면, 바로 너진똑일 텐데요, 최근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다루면서 실존주의적 질문들을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이 책도 비슷한 생각거리를 마구마구 던져주는 거 같아요. 음, 그런데 실존주의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어려운 뜻을 가진 단어는 되도록 쓰지 맙시다.

음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정답이란 것이 있고 그걸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보다는, 나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 간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예요. 세계란 정답이 없죠. 정답이나 진리가 있다고 해도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는 자기들 마음대로 잘 굴러가기 마련이죠. 사람은 생물학적 한계에서 벗어나기도 힘들구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실연 당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여하튼,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걸 싫어하고 싶어하는 반골 기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이 책을 필사하고 싶습니다. 철판볶음밥 벅벅 긁어내듯, 이야기를 창조하는 마법을 모로지 훔치고 싶네요.

믿음

어류라는 생물학적 분류는 없다고 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면 주 활동 장소가 물 안팎으로만 나뉘어질 뿐이라구요. 육지에서 유효한 분류 체계가 그대로 물 속까지 확장된다고 합니다. 나와 특정 물고기의 차이보다 물고기간 차이가 훨씬 클 수도 있다는 거죠.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지금 당신이 지니고 있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류”라는 말은 단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그렇다 하면 모든 게 마찬가지죠.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 키보드로 작성하고 있는 단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 한강 위 마포대교에서 자동차들이 왔다갔다 하는 풍경. 인류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나요? 가시광선의 특정 파장에 불과한 시야. 호르몬과 자극에 의한 반응과 복잡한 전기적 신호에 불과한 우리의 생각들.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작가 아버지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완벽합니다. “믿음”이란 것은 부실한 토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인류는 논리보다 중요한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논리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보편적인 믿음도 많구요. 의식 아래 쪽에 빙산처럼 거대하게 자리 잡은 무의식의 힘, 강력해진 지 오래 됐습니다. 책이든 인터넷이든 미디어든 어디에서나 그렇게 떠드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우리가 믿었던 것들을 박탈하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반항하는 인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태양이 우리 주위로 움직인다는걸 믿었고 종교와 신을 믿었고 역사 흐름의 방향성을 믿었고 정답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믿었으며 요즘은 과학과 자본주의를 믿으라 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강력합니다. “돈” 이후에는 어떤 믿음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나는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내 행동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옆자리에 있던 여자친구에게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자유”라고 답합니다. 인간이라는 틀에 갖힌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스스로 규정해왔건만 내 의식 밑에 있는 무의식에겐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전 계속해서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세상이 정한 틀을 자꾸 거부합니다. (선택적 거부일 수도 있지만 일단 그건 지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좀 더 예술가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거 같습니다. 굶어 죽을지언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치기어린 마음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거 같기도 합니다. 제 믿음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일까요?

이 질문을 여자친구에게 던지기 전에, 가안을 정해봤습니다. 그건 바로 “성장”입니다. 어디를 향한 성장인지는 불분명하나, 하여튼 지금의 상태보다 더 좋다고 믿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을 추구해왔던 거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어른스러움”에 집착했고, 지금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매니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돈에 대해서도 곱씹습니다. 계약연봉을 열심히 올리는 일이 곧 나의 성장을 의미하는 걸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흠. 제 믿음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일까요?

여자친구도 제게 같은 질문을 날렸습니다. 저는 “사회적 인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여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흠. 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사회적 인정”은 저에겐 그렇게 크게 작용하진 않는 거 같습니다.

믿음에 관한 선택적 상상

작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포기하니 어떤 심정이냐고 물어봅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성장과 자유가 무너져버린다면 내겐 무엇이 남을까요? 운명의 힘에 의해 알츠하이머가 30대 초반에 찾아와, 퇴행을 거듭하다 4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해외여행을 하다가 납치되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섬에 갇혀 평생 노예처럼 부려지다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글쎄요. N이라 상상력이 좀 풍부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믿음을 찾아서 꾸역꾸역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 거 같긴 해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 굉장히 희박한 확률의 미래를 상상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그나저나 자유를 상상하니 기분이 좀 좋아지긴 하더라구요. 아무런 연고 없는 덴마크 같은 나라에 (덴마크는 덴마크어를 쓰나요?) 무작정 표류하듯이 그 나라를 방문하여,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며, 자유와 성장을 만끽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마치 새로운 RPG 게임을 시작하듯이요. 아, 방금 희박한 확률의 미래를 상상하지 말자고 했나요. 그러면… 착잡함을 불러일으키는 상상보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합시다. 상상했을 때의 감정은 실존하니까요.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합시다. 요즘의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건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 리뷰도 곧잘(힘겹게) 쓰지요. 쓰레드도 종종 들어가구요. 믿음이란 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중꺾그마 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래도 믿음이란 걸 완전히 저버리고 싶진 않습니다. 저 또한 사람이라 믿음이 중요하니까요. 당분간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내 허약한 믿음을 더 공고히하는 데 힘을 쓰지 않을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