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스포)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드림웍스라는 이름에 대해 특별한 인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 슈렉도 기억이 굉장히 가물가물합니다. 슈렉 시리즈에선 지금까지 여전히 기억속에 살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장화신은 고양이가 모자를 들고 귀엽게 들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래 이미지) 초딩 시절 이 장면을 싸이월드에도 올리곤 했습니다. 영화를 조금이나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면, 감명받았던 느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겠죠.
관람등급은 전체이용가입니다. 그래서 너무 이야기가 유치해지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괜한 걱정이었네, 했습니다.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세 가지 요소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찰진 액션
하나는 액션! 예전에 드림웍스가 만들었던 <배드 가이즈>(2022)에서도 느낀 부분이지만, 과장된 애니메이션이 저는 참 좋습니다. 뭔가 애니메이션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통쾌함이 있는데, 그걸 아주 빵빵 잘 터트려줍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뭔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이라면, 드림웍스는 조금 날 것의 화려한 애니메이션이란 느낌이 듭니다. 약간 어이가 없어서 실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런 게 좋습니다.
초반부에서도 아주 눈길을 사로잡죠. 우리의 푸스인부츠가 커다란 골렘을 멋지게 때려잡는 모습. 아주 바람직합니다.
솔직한 고양이
장화신은 고양이는 말랑손 키티에게 가진 마음,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페리토에게 고백합니다. 페리토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말랑손에게 속마음을 터놓으라고 합니다. 푸스는 시간을 질질 끌지 않고 말랑손 키티에게 속마음을 터놓습니다.
만약 한번만 더 속마음을 드러내는 걸 망설였다면 좀 짜증났을 건데, (스토리상 어차피 전부 알게 될 테니까...) 그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말랑손은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합니다. 장화신은 고양이도 한 단계 성장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었으니까요.
영혼의 동굴에서 빠져나온 푸스가 말랑손과 페리토를 보고도 두루마리를 들고 앞으로 계속해서 뛰어갑니다. 이 때 말랑손이 가졌던 건 배신당한 분노라기 보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와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어떤 착잡함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무대인 커다란 별 위에서 푸스가 소원을 비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채로 말랑손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말랑손은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네가 또 도망친다면, 나와 영영 이별이다. 푸스는 인생 최대 내적 갈등에 놓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말랑손과 페리토 모두 알고 있습니다. 푸스가 용기를 내서 두려움과 맞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전개는 사랑스럽습니다. 말을 안하고 답답하게 서로 오해가 쌓여가는 암걸리는 상황이 아닌 것만 해도 필자는 너무 행복합니다.
초월적인 개념이 캐릭터로 묘사된 것
전체연령가인 애니메이션에서 죽음이라는 건 다루기가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라는 무겁고 진중한 명제는 언제나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그걸 드림웍스는 훌륭하게 다룬 것 같습니다. 감정이라는 걸 훌륭하게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풀어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2015)처럼, 장화신은 고양이에서는 이 늑대 캐릭터로 훌륭하게 죽음을 동화적으로 풀어냅니다.
푸스는 9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것도 가벼웠죠. 그러나 마지막 목숨의 삶에서 다가온, 저항할 수 없는 존재는, 푸스로 하여금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합니다. 푸스는 계속에서 그로부터 도망치지만, 그는 계속 쫓아옵니다. 푸스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롭게. 이런 것에서 죽음의 속성을 굉장히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푸스는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며 이번 삶을 알차게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제 푸스는 이순신 장군께서 말씀하신 필사즉생필생즉사의 마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늑대를 제대로 상대하게 되며, 늑대는 다 된 먹잇감을 놓쳤다는 듯이 아쉬워하며 물러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내가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는 건 알고 있지?? 크~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또 다른 초월적인 개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단어로는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무한한 자비, 종교적 실천, 끝없는 관용, 예수, 석가모니, 마음의 양심 등을 대변한다고 할까요, 그 주인공은 페리토입니다.
말랑손 키티와 장화신은 고양이는 세속적입니다. 반면 페리토는 솔직하며 밝습니다. 그 순수한 면은 욕할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극심한 욕설도 초월한 마음을 가진 페리토에게는 재미있는 단어의 배열일 뿐입니다. 사사로운 것에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들은 페리토의 어린 시절 비극적인 이야기 (페리토 본인은 아주 재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본인들은 어떠한 짓을 해서라도 페리토의 순수한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함께 느끼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순수하다는 건 아직 물들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순수한 다이아몬드처럼 아주 강력하고 응집된 무언가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페리토의 이런 초월적인 면모는 지금까지 이기적으로 살았던 고양이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줍니다. 푸스가 고민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라는 것. 우정의 의미 등등. 특히 푸스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며 페리토는 사실상 부처님 손바닥처럼 푸스를 갱생시켜줍니다.
이런 페리토의 존재도 우리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애니메이션이 잘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캐릭터들
푸스, 페리토, 늑대 빼고는 캐릭터가 그렇게 의미있게 사용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말랑손도 푸스의 두려움으로 인한 피해자 포지션일 뿐입니다. 곰 세마리와 한 딸내미의 경우, 가족의 소중함은 잘 알겠지만, 주 이야기에서 비껴나가 있는 서브 이야기라서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절대악으로 묘사되는 보라색 머리 뚱뚱보도 그냥 여느 악당처럼 마지막에 빠이빠이합니다.
결론
결론은 없습니다. 10점 만점에 8점 정도 주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쿠키 영상도 없습니다. 나름 재밌게 잘 봤다, 입니다. 안녕~